What is worth Learning in our School 우리는 가치 있는 것만을 교육합니다.

인물/교육/문화

제목 Danyon Loader
첨부파일
 

 2003 5, 한 뉴질랜드의 수영선수가 플로리다 포트 로더데일에 있는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200미터와 400미터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따 뉴질랜드 최초로 올림픽 수영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고 뉴질랜드 스포츠를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한 대니언 로더(Danyon Lauder)였다. 열두 살이 되어서야 전문적인 수영 훈련을 받기 시작했지만 17세의 나이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며 세계를 놀라게 한 그는 은퇴 이후에 어린 수영선수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목표이자 모범이 되어 살고 있다.

 

1975 4 21일 뉴질랜드 남섬 티마루에서 태어난 대니언 조셉 로더(Danyon Joseph Loader)는 어린 시절 물 속에서 노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자진해서 하루에 목욕을 네 번씩이나 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 피터(Peter)는 사우스 더니든에 있는 실내수영장에서 아들에게 수영을 가르쳤고, 열 살이 되자 더니든의 제니스 아마추어 수영 클럽에 다니게 했다. 그때만 해도 대니언은 어떻게 하면 연습을 빠지고 비디오 게임을 하러 갈 수 있을까 궁리하는 보통 꼬마였다. “연습을 안 하고 딴 데서 놀다가 엄마가 데리러 올 시간이 되면 머리에 물을 묻히고 타올을 걸쳐 수영하고 나온 척을 했지요.” 그러다 열두 살 되던 1988년에 그는 던칸 라잉(Duncan Laing)이라는 코치의 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던칸은 대니언의 잠재력을 알아보았고 그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영선수로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다음 해 1989년에 대니언은 뉴질랜드 국가 챔피언쉽에서 메달을 따고 뉴질랜드 국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수영선수가 되었으며, 14세 때에는 오클랜드 커먼웰스 게임에 출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반 후인 17세 때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미국 선수 멜빈 스튜어트(Melvin Stewart)를 제치고 은메달을 거머쥐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제 수영계에 드물었던 뉴질랜드인이라는 국적에 17세라는 어린 나이, 게다가 경기 때 평소 즐기던 소박한 수영복과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나간 것 등으로 인해 그는 여러 가지로 주목을 받았다.

 

올림픽 이후 그는 매년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993년에 유러피언 월드컵 투어 기간 중 8일간 200미터 접형의 세계 신기록을 세 번이나 갱신했고, 1994년 빅토리아에서 열린 커먼웰스 게임에서는 200미터 접형 금메달, 400미터 자유형 은메달, 200미터 자유형 동메달, 그리고 100미터와 200미터 릴레이에서도 각각 은메달을 추가했다. 이듬해 로마에서 열린 세계 챔피언쉽에서도 그는 200미터 접형 은메달, 200미터와 400미터 자유형에서 동메달을 땄다. 1995년에는 유럽 월드컵에서 8개의 금메달을 따 메달과 기록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선수 중 하나가 되었지만 이것은 다음 해 있을 올림픽에서의 영광에 비한다면 서곡에 불과했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대니언은 200미터와 400미터 자유형에서 각각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경기에서 우승에 대한 대니언의 의지를 확고하게 한 것은 그가 뉴질랜드에서 왔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었다. “경기 직전 미국선수들과 호주선수들이 호명되었을 때 그들은 엄청난 환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온 제 이름이 불렸을 때 들려온 것은 우리 팀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소리 뿐이었지요. 그게 나를 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조그만 나라에서 왔지만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1988년에 수리남에서 온 앤서니 네스티가 유명한 선수들을 누르고 금메달을 딴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21세의 이 젊은 수영선수는 그 결심을 경기 결과로 보여주었다.

 

로더는 모든 훈련을 스승 던칸 라잉과 함께, 그들의 고향에 있는 모아나 수영장이나 오타고 대학 수영장에서 했다. 라잉은 대니언을마음이 시키는대로 따르는 전형적인 키위라고 하면서그는 말 없이 행동으로 먼저 보여준다. 물에 뛰어들어 이기기 위해 수영한다.”고 말했다. 호주인 코치 돈 탈봇(Don Talbot)은 대니언을조용한 암살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니언은 아틀란타 올림픽 이후 다음 2년 반 동안 수영을 계속했고, 동시에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 두 학기 동안 재학하며 공부했다. 1998년 콸라룸푸르 커먼웰스 게임에서 그는 200미터 릴레이에서 동메달을 땄고 이 경기 이후 은퇴해 수영선수 대니언이 아닌 보통사람 대니언으로서 사는 삶을 만끽했다. 태극권을 연습하고 스쿠버 다이버 자격증을 따기도 하며 스포츠인으로서의 활동을 즐기는 동시에, 지역에 기반을 둔 작은 수영 클럽을 만들어 어린 수영선수들을 가르쳤다.

 

최근 그는 뉴질랜드 올림픽 대사로 임명되어 베이징 올림픽을 위한 뉴질랜드팀 캠페인에 참여하게 되었다. 뉴질랜드 올림픽위원회 사무국장 베리 마이스터(Berry Maister)대니언은 큰 대회에 나가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선수들에게 완벽한 롤 모델이 되어줄 것이라며 그의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고, 로더는이 역할을 예전 올림픽 대회에서 뛰었던 선수로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뉴질랜드의 베이징 올림픽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긴다.”고 말하며 뉴질랜드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대니언 로더는 수영선수로서 뉴질랜드를 빛낸 공로를 치하 받아 뉴질랜드 올림픽 위원회로부터 론즈데일 컵을 받았고, 할버그 어워드에서 두 번이나 올해의 스포츠맨으로 선정되고 2000년에는 90년대 뉴질랜드 스포츠인에 이름을 올렸다.

 

- 자료출처: goodday NZ -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