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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Michael Camp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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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Campbell 1969~

Birthplace: Hawera, Taranaki

Michael Campbell is a professional golfer and the first New Zealander to win the US Open Trophy, which he succeeded in doing in 2005. Campbell has been playing golf since his childhood, joining his first club at the age of 12 and representing New Zealand for the first time at age 17.

The New Zealand Herald

 

마이클은 뉴질랜드의 경관이 아름다운 Taranaki 부근의 작은 마을 Hawera 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을 Patea근방의 작은 농장에서 보냈다. 마이클은 아버지가 Ngati Ruanui부족이고 어머니가 Nga Rauru부족인 마오리족의 후손이다. 그의 조상이 1840년에 스코틀랜드에서 뉴질랜드로 이민와서 스코틀랜드의 혈통도 물려받았다. 마이클이 5살 때 그의 가족(아버지 톰, 어머니 마리아, 누이 미셀)이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으로 이사왔다.

 

마이클은 웰링터의 Titahi Bay 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Titahi Bay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어머니가 럭비가 너무 거친 스포츠라며 말리기 전까지 뉴질랜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럭비를 했다. 럭비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마이클은 천성적으로 행동반경이 넓은 스포츠에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10살에서 14살까지 웰링턴에서 소프트볼을 했고, 스쿼시와 탁구도 즐겨했다.

 

마이클이 골프를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아버지의 캐디를 하면서 부터다. 마이클은 10살에 골프클럽에 들어갔고 12살 때까지 핸디캡 11을 기록했다. 12살이 되고 장래 희망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는 프로 골프선수가 되어 세계 최고가 되고 싶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 4년 만에 그는 Tihahi Bay 골프코스의 기록을 깼다. 16살 때부터 그는 웰링턴을 대표하는 주니어 골프팀 선수가 되었고, 18살 때 뉴질랜드 아마츄어 골프팀의 선수가 되었다. 이 시기(1988~93) 동안, 많은 나라에서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고 엄청난 연습량을 통해 그의 경기는 날로 발전하였다.

 

마이클의 가족들은 마이클이 프로 골프선수가 되는 것을 뒷바라지 해주었지만, 그에게 차선책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그래서 마이클은 대학을 나와 뉴질랜드 통신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통신 기술자로 경력을 쌓았다. 동시에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스윙을 연습했다. 골프장에서 그 결과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8년간 마이클을 잘 이끌었던 Mal Tongue코치의 도움이 그의 기량 향상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 시기에 하이라이트는 1992 Eisenhower Trophy를 획득한 첫 번째 뉴질랜드 팀의 일원이 되었던 것과, 호주 아마추어 챔피언 쉽에서 우승한 첫번째 뉴질랜드인이 되었던 것이다.

 

1993년에 프로골퍼로 전향했고, 5번째 도전 만에 호주 투어에서 Canon Challenge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 다음 해에 마이클은 Challenge Tour에서 경기하기 위해 유럽으로 갔고, 1995년 시즌 전 유럽 투어를 보장하는 세 개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마이클은 St Andrews에서 열린 1995 Open Championship경기의 3라운드 이후에 경기를 주도하며,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입지를 바로 세우게 되었다. 경기결과는 동률 3위로 끝났지만, 경기의 내용이나 운영능력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되었다. 좋은 폼을 그 해 말까지 잘 유지하면서 유럽투어의 전체 4위로 마감하자 그의 세계랭킹은 23위까지 상승하게 되었다. 뉴질랜드 오픈에 참석하고자 돌아오는 길에 말레이지아에서 열린 the Dunhill Masters에서 우승을 했다. 그러나 뉴질랜드 오픈 그 해 마지막 경기에서 그는 손목 부상을 입고 1996 3월까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손목부상은 그의 폼과 자신감에 영향을 주었고, 그는 지난 시즌의 그의 폼을 되찾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소용없었고 그의 유럽투어 자격도 상실되었다. 이후 1997년에 유럽투어 자격을 다시 획득하여 1998년 시즌을 다시 대비하게 되었다.

 

그의 경기에 대한 자신감이 점차로 회복되어 1999Johnnie Walker Classic에서 다시 우승자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2000년에는 Heineken Classic, Australian Masters, German Masters대회에서 우승하고 뉴질랜드 오픈에 나가서도 위축되지 않은 탓에 그는 다시금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되었고 그의 세계 랭킹은 14위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의 상승된 순위 덕에 2001년에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골프 투어에 참가를 했다. 유럽에서는 선방했지만 미국에서의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중 2004년에는 Top 10에 오른 경기가 한 경기에 불과했지만 스코틀랜드 오픈에서 2위를 차지하여 2005년에 US Open대회에 초청을 받아 참가하게 되었다. 파인허스트는 골퍼들에게 악명높은 코스지만 캠벨은 편안하게 경기에 임했고 참가선수중 유일하게 이븐파 280타로 (71-69-71-69)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타이거 우즈가 막판에 2타 차로 따라 붙었지만 그의 우승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날의 경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뉴질랜드 총리가 그의 경기를 관전하느라 의회가 연기될 정도였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강인한 의지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등은 그가 굴곡이 많이 시기를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골퍼가 되겠다는 그의 꿈을 실현시켜 주었다.

US Open에서 우승한 것은 분명히 그의 골프인생에 있어서 정점의 순간임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는 계속해서 미래를 향해 도전하고 있고 사랑받는 키위스타로서 자신을 생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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